영화 부당거래(2010)에는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호의가 계속되면은,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협박에 가까운 대사이지만 소비 심리를 설명하는 문장으로는 이보다 정확한 말을 찾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한 번 손에 쥔 혜택을 ‘받은 것’이 아니라 ‘원래 내 것’으로 재분류합니다. 그리고 그 재분류가 끝나는 순간, 혜택의 회수는 단순한 종료가 아니라 박탈이 됩니다. 혜택은 선물이 아니라 새로운 기준점이 된다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보유 효과(Endowment Effect)는 이 과정을 잘…
손정의(마사요시 손)가 SoftBank World 2026 기조연설에서 66분 동안 쏟아낸 숫자들, 들으면서 계속 든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이 양반, 던지는 숫자의 규모가 넘사벽이다. 비전은 형용사가 아니라 기한과 숫자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손정의가 “많이”, “엄청”, “대단히” 같은 형용사를 경멸했다는 대목입니다. 형용사를 쓰는 순간 윤곽이 흐려지고 전략이 안 선다는 것. 그가 내린 비전의 정의는 이렇습니다. 타임머신 타고 15년 뒤를 보고 온 것처럼 말하는 것 그러면서…
다시, 셸 Laude Institute 팀이 공개한 Headlong의 철학 문서(philosophy.md)를 읽었다. 제목부터가 선언적이다. “The Shell is Back at the Center of Computing.” 1971년 켄 톰슨이 만든 최초의 유닉스 셸은 한 줄을 읽고, 프로그램을 찾고, 실행하고, 기다리는 얇은 루프였다. 그게 전부였고, 그걸로 충분했다. 그 후 GUI가 이겼고 웹이 이겼다. 터미널은 git push를 하거나 도커 컨테이너를 재시작할 때 마지못해 들르는 곳이 되었다. 그런데 LLM이 그…
인터넷을 떠돌다 이런 문장을 봤습니다. “안 할 이유를 찾고 있다면, 하라. 할 이유를 찾고 있다면, 하지 마라(if you’re looking for reasons not to do it, do it. if you’re looking for reasons to do it, don’t do it).” 처음엔 그냥 잘 만든 경구 같았는데, 며칠 곱씹을수록 이게 단순한 자기계발 슬로건이 아니라 사람의 의사결정 구조를 꽤 정확하게 짚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프롬프트가 한 줄로 줄어든 순간 이번 리만 관련 뉴스에서 내가 제일 오래 붙잡고 있었던 건 67.2%라는 숫자가 아니었다. “believe in yourself”라는 프롬프트였다. 수학 얘기는 솔직히 내 손을 떠난 영역이지만, 사람이 기계에게 건넨 말이 저 수준이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그래서 더 이상하다. 실행한 사람은 수학자가 아니라 Anthropic 엔지니어 Jarred Sumner였고 그의 개입은 대체로 “keep going” / “believe in yourself” 수준이었다. 첫…
요즘 나를 오래 붙잡아 둔 메모가 하나 있다. 두 개의 씨앗 사례에서 출발해 역발상의 문법을 정리해 놓은 카탈로그다. 두 사례는 이렇다. 틀리지 않는 AI가 아니라 사람처럼 틀리는 AI(Simile), 그리고 1회용 발사체가 아니라 재사용 발사체(SpaceX). 이 조합이 흥미로운 이유는, 겉보기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하나는 소비자 리서치용 시뮬레이션이고 하나는 로켓이다. 그런데 두 사례를 나란히 놓으면 같은 모양의 구멍이 보인다. 나는 이 글에서 그…
설치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Orca를 깔고 워크스페이스를 겨우 정리해둔 참인데, 벌써 다음 후보 이야기가 들린다. 며칠 전 새벽 Orca 관련 블로그글을 쓰다사 thread에서 Paseo 관련 글을 읽고 드는 첫 감정은 감탄이 아니라 피로였다. 도구를 익히는 속도보다 도구가 교체되는 속도가 더 빠른 시기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실감. 하지만 차분하게 다시 자칭 AI 에반젤리스트(Evangelist) 로서, 조사하고 살펴본 결론은 이렇다. 둘은 같은 자리를 놓고 싸우는…
아이를 키우면서 자주 하게 되는 질문이 있다. 나는 이 아이에게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까. 재산도, 좋은 성적도 아니라면, 결국 남는 것은 아이가 스스로 살아갈 힘일 것이다. 나는 그 힘의 이름을 이렇게 부르고 싶다. 정답이 없는 문제에서 스스로 질문하고, 자기만의 해답을 만들어내는 힘. 조벽 교수의 이야기 EBS <세계 최고의 교수> 중 1인으로 선정된 조벽 교수가 “학교 공부 절반은 버리고 ‘이 능력’을 키우라”고 말한…
요즘 코딩 에이전트를 쓰다 보면 이상한 위화감이 든다. 모델은 계속 좋아지는데, 정작 그 모델을 감싸고 있는 껍데기(하네스)는 몇 세대 전 모델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그대로라는 느낌. Prime Intellect가 공개한 Prime Agent 소개 글을 읽으면서, 내가 막연히 느끼던 그 답답함에 이름이 붙는 기분이었다. 하네스가 모델의 발목을 잡는다 글의 문제의식은 명확하다. 고정된 도구 호출 스키마와 컨텍스트 압축이 모델로 하여금 자기를 돕는 구조를 오히려 우회하게 만든다는…
에이전트를 써서 작업을 하다 보면 어느 시점부터는 도구 자체가 아니라 운영 방식이 문제가 된다. 한 번에 하나씩만 돌릴 수 있다는 점, 여러 개를 돌리면 서로 파일을 밟는다는 점, 그리고 결국 사람이 승인 버튼만 누르다 하루가 간다는 점. Orca는 내가 한 번쯤 고민했던 요소가 거의 다 제품 안에 들어와 있었다. Orca를 “또 하나의 AI IDE”로 보면 핵심을 놓친다 Orca의 본질은 채팅 UI가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