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 늘어난 혜택을 되돌리지 못하는 이유

영화 부당거래(2010)에는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호의가 계속되면은,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협박에 가까운 대사이지만 소비 심리를 설명하는 문장으로는 이보다 정확한 말을 찾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한 번 손에 쥔 혜택을 ‘받은 것’이 아니라 ‘원래 내 것’으로 재분류합니다. 그리고 그 재분류가 끝나는 순간, 혜택의 회수는 단순한 종료가 아니라 박탈이 됩니다. 혜택은 선물이 아니라 새로운 기준점이 된다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보유 효과(Endowment Effect)는 이 과정을 잘…

2040년, 14년 뒤의 숫자들 — 손정의가 66분 동안 형용사를 한 번도 쓰지 않은 이유

손정의(마사요시 손)가 SoftBank World 2026 기조연설에서 66분 동안 쏟아낸 숫자들, 들으면서 계속 든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이 양반, 던지는 숫자의 규모가 넘사벽이다. 비전은 형용사가 아니라 기한과 숫자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손정의가 “많이”, “엄청”, “대단히” 같은 형용사를 경멸했다는 대목입니다. 형용사를 쓰는 순간 윤곽이 흐려지고 전략이 안 선다는 것. 그가 내린 비전의 정의는 이렇습니다. 타임머신 타고 15년 뒤를 보고 온 것처럼 말하는 것 그러면서…

Headlong: 셸이 다시 컴퓨팅의 중심으로 돌아왔다

다시, 셸 Laude Institute 팀이 공개한 Headlong의 철학 문서(philosophy.md)를 읽었다. 제목부터가 선언적이다. “The Shell is Back at the Center of Computing.” 1971년 켄 톰슨이 만든 최초의 유닉스 셸은 한 줄을 읽고, 프로그램을 찾고, 실행하고, 기다리는 얇은 루프였다. 그게 전부였고, 그걸로 충분했다. 그 후 GUI가 이겼고 웹이 이겼다. 터미널은 git push를 하거나 도커 컨테이너를 재시작할 때 마지못해 들르는 곳이 되었다. 그런데 LLM이 그…

“안 할 이유를 찾고 있다면 하라”: 우리가 이유를 찾는 순간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

인터넷을 떠돌다 이런 문장을 봤습니다. “안 할 이유를 찾고 있다면, 하라. 할 이유를 찾고 있다면, 하지 마라(if you’re looking for reasons not to do it, do it. if you’re looking for reasons to do it, don’t do it).” 처음엔 그냥 잘 만든 경구 같았는데, 며칠 곱씹을수록 이게 단순한 자기계발 슬로건이 아니라 사람의 의사결정 구조를 꽤 정확하게 짚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너 자신을 믿어봐” — 2026년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의 정체

프롬프트가 한 줄로 줄어든 순간 이번 리만 관련 뉴스에서 내가 제일 오래 붙잡고 있었던 건 67.2%라는 숫자가 아니었다. “believe in yourself”라는 프롬프트였다. 수학 얘기는 솔직히 내 손을 떠난 영역이지만, 사람이 기계에게 건넨 말이 저 수준이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그래서 더 이상하다. 실행한 사람은 수학자가 아니라 Anthropic 엔지니어 Jarred Sumner였고 그의 개입은 대체로 “keep going” / “believe in yourself” 수준이었다. 첫…

역발상은 반대로 하기가 아니다 — Simile과 SpaceX로 다시 배우는 리프레이밍

요즘 나를 오래 붙잡아 둔 메모가 하나 있다. 두 개의 씨앗 사례에서 출발해 역발상의 문법을 정리해 놓은 카탈로그다. 두 사례는 이렇다. 틀리지 않는 AI가 아니라 사람처럼 틀리는 AI(Simile), 그리고 1회용 발사체가 아니라 재사용 발사체(SpaceX). 이 조합이 흥미로운 이유는, 겉보기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하나는 소비자 리서치용 시뮬레이션이고 하나는 로켓이다. 그런데 두 사례를 나란히 놓으면 같은 모양의 구멍이 보인다. 나는 이 글에서 그…

Orca 설치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Paseo 얘기가 나온다

설치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Orca를 깔고 워크스페이스를 겨우 정리해둔 참인데, 벌써 다음 후보 이야기가 들린다. 며칠 전 새벽 Orca 관련 블로그글을 쓰다사 thread에서 Paseo 관련 글을 읽고 드는 첫 감정은 감탄이 아니라 피로였다. 도구를 익히는 속도보다 도구가 교체되는 속도가 더 빠른 시기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실감. 하지만 차분하게 다시 자칭 AI 에반젤리스트(Evangelist) 로서, 조사하고 살펴본 결론은 이렇다. 둘은 같은 자리를 놓고 싸우는…

아이에게 열어주어야 할 길: 정답 없는 문제 앞에서 스스로 묻는 힘

아이를 키우면서 자주 하게 되는 질문이 있다. 나는 이 아이에게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까. 재산도, 좋은 성적도 아니라면, 결국 남는 것은 아이가 스스로 살아갈 힘일 것이다. 나는 그 힘의 이름을 이렇게 부르고 싶다. 정답이 없는 문제에서 스스로 질문하고, 자기만의 해답을 만들어내는 힘. 조벽 교수의 이야기 EBS <세계 최고의 교수> 중 1인으로 선정된 조벽 교수가 “학교 공부 절반은 버리고 ‘이 능력’을 키우라”고 말한…

Prime Agent : 하네스가 스스로 자라기 시작했다

요즘 코딩 에이전트를 쓰다 보면 이상한 위화감이 든다. 모델은 계속 좋아지는데, 정작 그 모델을 감싸고 있는 껍데기(하네스)는 몇 세대 전 모델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그대로라는 느낌. Prime Intellect가 공개한 Prime Agent 소개 글을 읽으면서, 내가 막연히 느끼던 그 답답함에 이름이 붙는 기분이었다. 하네스가 모델의 발목을 잡는다 글의 문제의식은 명확하다. 고정된 도구 호출 스키마와 컨텍스트 압축이 모델로 하여금 자기를 돕는 구조를 오히려 우회하게 만든다는…

에이전트로 일할 때 늘 걸리던 것들이 거의 다 들어있는 IDE, Orca ADE

에이전트를 써서 작업을 하다 보면 어느 시점부터는 도구 자체가 아니라 운영 방식이 문제가 된다. 한 번에 하나씩만 돌릴 수 있다는 점, 여러 개를 돌리면 서로 파일을 밟는다는 점, 그리고 결국 사람이 승인 버튼만 누르다 하루가 간다는 점. Orca는 내가 한 번쯤 고민했던 요소가 거의 다 제품 안에 들어와 있었다. Orca를 “또 하나의 AI IDE”로 보면 핵심을 놓친다 Orca의 본질은 채팅 UI가 아니라…